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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상록문화제 홈페이지 방문을 환영합니다.

심훈
심훈 작가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1977년 제1회 행사를 시작으로

매년 9월말에서 10월초에 3~4일 동안 당진시 일원에서 상록문화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SIMHOON SANGNOK CULTURE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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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훈선생의 탄생과 성장(1901~1918)

- 심훈선생은 경기도 시흥군 북면 노량진리 검은돌집(現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1901년에 태어났습니다.
- 본명은 심대섭(沈大燮)이며 심훈(沈熏)은 예명(藝名)입니다.
- 호는 삼준, 삼보, 금강생(金剛生), 해풍(海風), 백랑(白浪)등이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의 성격은 명랑하고 활발했다. 생각하고 망설이기보다 행동이 앞서고 능동적이었으며, 남의 뒤를 따라가는 일보다 남의 앞에 서기를 좋아했다. 또한 소박한 것보다 화려한 것을 좋아했다. 出曲:심경림.'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민족 저항 詩人 '상록수'의 作家 沈熏 文學과 생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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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1 만세운동 참여와 수감(1919)

- 경성 제1 고등학교 4학년 때 3.1 만세운동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쓴 '어머님께 올린 글월'은 심훈선생님의 민족의식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3. 좌절기와 극복기(1920년~1923년)

심훈 선생님은 3.1만세운동의 실패를 목격하고 좌절감을 달래기 위하여 중국으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문화와 접하게 되었고, 대중예술의 파급력을 인식하여 극문학(劇文學)을 공부합니다.

중국 유학시절(1921~1923) 심훈선생님의 책으로 추정되는(劇文學)/러시아 희곡집, 심훈선생의 친필 싸인(D.S.Shim)을 확인할 수 있다.

 


4. 대중매체를 통한 문학 및 영화 활동(1924년~1927년)

귀국 후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미인의 恨>이란 외국 장편소설의 후반부를 번안하여 연재하였고, 영화<장한몽長恨夢> 주역인 이수일(李守一)역의 후반부를 대역하였습니다. 1926년에는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34회 걸쳐 연재를 하였습니다. 1927년 마침내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직접 원작ㆍ각색ㆍ감독하여 단성사에 개봉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당시<아리랑> 다음으로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about1_31408881773.png5. 영화 저녁 활동과 희망의 빛(1928년~1932년)

일제의 검열이라는 제한적인 글쓰기가 형성되어가는 암울한 분위기에서도 심훈선생님은 1928년 기자로 입사하여 여러 편의 영화논평을 작성합니다. 그리고 1930년 3월 1일에 시 <그날이 오면>을 발표합니다. 1932년에는 첫 아들 재건(在建)이 출생하여 희망의 빛을 느끼셨던 듯 합니다.

 

6. 당진정착, 농촌에서 희망을 찾다(1932년~1936년)

부모님이 살고 있던 당진으로 이사하여 심훈문학의 산실인 필경사(筆耕舍)를 짓고, 농촌 생활의 부대낌을 통해 농촌에서 희망을 찾는 노력을 합니다. <봄의 서곡(영원의 미소)>, <직녀성(織女星)>, <상록수>등은 심훈선생님의 희망찾기 여러 모습들로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심훈선생님으 1936년 9월 잔잔한 향기를 남기며 긴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그 향기의 마지막 짧은 미소가 1936년 8월에 쓴 <오오, 조선의 남아여!>입니다.

 

7. <상록수>와 당진

심훈선생님의 장조카인 심재영씨(1912~1995, 소설 <상록수>의 남자주인공으로 추정)의 글에 의하면 심훈선생님이 당진생활에서 주로 어울렸던 사람들은 심재영과 공동경작화원(문맹퇴치와 생활개선운동을 활발히 하였음)들로 보입니다.


심재영씨의 생전 녹취록에 따르면 '숙부님은 우리 공동경작회원들과 농촌이야기를 하며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수첩에 빼곡히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해방 후 산업화가 이어지는 60~70년대에 상록수 정신(심훈선생님 선양사업)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집니다. 상록학원(당진 송악 부곡리에 위치)과 '심훈상록문화제'가 그 모습일 것입니다. 상록학원의 원훈 및 생활신조였던 '내고장을 사랑하자, 참되자, 배우자, 일하자, 뭉치자'라는 상록수 정신은 오늘날 '심훈상록문화제'가 계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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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7년 6월 2일, 심재영선생님의 과원(당진 부곡리 일원으로 추정)에서 찍은 사진(오른쪽에서 2번째분이 심훈의 장조카 심재영선생님, 나머지3분은 공동경작회 회원으로 추정)
2. 공동경작회 회원들 단체 사진(1937년 6월 28일)(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분이 심재영선생님으로 추정됨)
3. 1960년대 상록학원 시간표
4. 1960년대 상록학원건물 앞에서 단체 사진촬영(오른편 뒤쪽으로 <상록학원>간판이 보인다.)
5. 1960년대 상록학원 학생들의 수업장면
6. 1976년 상록탑 건립 및 제막식 행사 후 앞에서 사진촬영(왼쪽에서 세번째분이 안정옥 여사(심훈선생님 부인), 두 번째 분이 심재영선생님(심훈선생님의 장조카)
7. 1970년대 상록문화제 행사장면(멀리 상록탑이 우뚝 서있는 것을 알 수 있음)

 

출처 : 당진시청 문화관광과 문화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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